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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혁가들ㅡ어거스틴.성프란체스코.칼빈등 어거스틴성프란체스코칼빈캍뱅루터위사람들은 각각 어떤특성?일?을했는지알기쉽게 설명좀요 기독교개신교외 이단답글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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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
요약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이었다. 중세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하게 한 선구자였다. 주요 저서인《고백록》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신과 영혼이었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가 그의 이름이며 주요저서라고 할 수 있는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s》에 자신의 생애가 기술되어 전한다. 354년 누미디아(북아프리카) 타가스테(Tagaste:지금의 수카라 당시 로마의 속지)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이교도의 하급관리였고 어머니인 모니카는 열성적인 그리스도교도였다. 어머니를 통해 신의 섭리를 배우고 익혔다. 법률공부를 위해 카르타고로 유학하였는데 방탕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수사학(修辭學) 등을 공부하여, 당시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로마제국 말기 청년시절을 보내며 한때 타락생활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9세 때 M.T.키케로의 《철학의 권유 Hortensius》를 읽고 지적 탐구에 강렬한 관심이 쏠려 마침내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과, 체계화하기 시작한 우주론(宇宙論)을 주장하는 마니교에 심취하였다. 그 후 그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마니교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신(新)플라톤주의에서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편력을 하였다. 그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384년에 만난 밀라노의 주교(主敎) 암브로시우스였다.
그는 개종에 앞서 친한 사람들과 밀라노 교외에서 수개월을 보내면서 토론을 벌였는데, 그 내용들이 초기의 저작으로 편찬되었다. 388년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사제(司祭)의 직책을 맡게 되었고, 395년에는 히포의 주교가 되어 그곳에서 바쁜 직무를 수행하는 한편, 많은 저작을 발표하였다. 《고백록》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대작으로서는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신국론(神國論)》 등이 널리 알려졌다.
만족(蠻族) 침입의 위험을 직접 당하면서 죽어간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이었으며, 동시에 중세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하게 한 선구자였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참된 행복을 찾고자 하는 활기있는 탐구를 위한 것으로서, 그가 살아온 생애에서 그것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그 체험을 통하여 찾아낸 결론은 《고백록》의 유명한 구절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 때까지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인간의 참된 행복은 신을 사랑하는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신을 사랑하려면 신을 알아야 함은 물론, 신이 잠재해 있다는 우리의 영혼도 알아야만 한다. 그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철학의 대상으로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신과 영혼이었다. 신은 우리 영혼에 내재하는 진리의 근원이므로, 신을 찾고자 한다면 굳이 외계로 눈을 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통찰의 눈을 돌려야 한다. 윤리에서는 모든 인간행위의 원동력이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이며, 윤리적인 선악은 그 사랑이 무엇으로 향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였고, 마땅히 사랑해야 할 신을 사랑하는 자가 의인(義人)이고, 신을 미워하면서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악인(惡人)이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두산백과
프란치스코[ Francesco d'Assisi ]
요약 가톨릭 성인. 프란치스코회 창립자.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20세에 회심하여 모든 재산을 버리고 평생을 청빈하게 살며 이웃 사랑에 헌신했다. 1224년에 성흔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태양의 찬가》 같은 뛰어난 시도 남겼다.
프란치스코회의 창립자. 가톨릭의 성인(축일 10월 4일). 중부 이탈리아 아시시의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향락을 추구하였고, 기사(騎士)가 될 꿈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20세 때에 회심(回心)하여, 세속적인 재산을 깨끗이 버리고 완전히 청빈한 생활을 하기로 서약, 청빈 ·겸손 ·이웃에 대한 사랑에 헌신하였다. 1209년 11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만나, 청빈을 주지(主旨)로 한 ‘작은 형제의 모임’의 최초의 수도회칙(修道會則)의 인가를 청원, 구두약속을 받은 다음 이 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에게 권유하여 여자를 위한 수도회(클라라회)를 설립케 하고, 다시 속인(俗人) 남녀를 위한 제3회도 조직하였다. 만년인 1224년에 자신의 몸에 성흔(聖痕: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옆구리와 양손 ·양발에 생긴 5개의 상처)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애로운 인품과 그가 행한 기적은, 모든 시대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어 있다. ‘신의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 불리고 있듯이, 《태양의 찬가》를 비롯하여 뛰어난 시도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란치스코 [Francesco d'Assis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칼빈이 칼뱅입니다.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칼뱅[ Calvin, Jean ]
개신교의 장로교회를 창설한 프랑스 출신의 종교개혁가이자 신학자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개혁자로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립하였으며 칼뱅주의를 이룩한 인물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에는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인문주의자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1533년에는 강연 초고 작성에 에라스뮈스와 루터를 인용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은신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초기 교회로의 회복을 꿈꾸며 로마 가톨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복음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교를 확립하였고, 이단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그의 대표작 <기독교 강요(綱要)>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박해받는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저술되었으며 복음주의의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또한, 그는 제네바의 종교개혁 운동에도 참여하였는데, 철저한 신권 정치를 지향했기 때문에 추방당하여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 후 개혁 교회의 목회자로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다가 제네바에 다시 초빙되어 인문주의자들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그곳의 교회 제도를 정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엄격한 신권 정치를 시도하여 실행에 옮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칼뱅 [Calvin, Jean]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2001. 12. 20., 강동효)//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루터[ Luther, Martin ]
출생 - 사망
1483년 ~ 1546년
직업
신학자, 종교개혁자
국적
독일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부였던 루터는 교회의 부패에 항거하여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免罪符) 판매를 반박하는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 문 앞에 게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종교개혁으로 확산되었으며 개신교를 탄생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루터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교황으로부터 파문 칙령을 받은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9개월간 작센 선제후의 보호 아래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거하면서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그의 성경 번역 작업은 독일의 민중 계몽과 함께 독일어 통일과 발전을 불러왔다. 그 후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루터는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루터파 교회'를 탄생시켰다. 그의 신학은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서(sola scriptura)'를 중심 사상으로 하며, 신의 구원을 받는 '하나님 중심의 구원'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루터 [Luther, Martin]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2001. 12. 20., 강동효)//